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타람 술탄국 (문단 편집) ==== 자바와 마두라의 통합 ==== 술탄 아궁의 지휘 하에 마타람 술탄국은 자바 동부의 라이벌 [[인도네시아/역사#수라바야 공국|수라바야 공국]]과 11년에 걸친 긴 전쟁(1614–1625)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수라바야가 마타람 본토를 노리고 공격해오는 위기도 있었지만 술탄 아궁은 전투의 승리로 이를 극복하였으며, 차근차근 수라바야의 동맹 세력들인 라슴(Lasem, 1616년 원정), 파수루안(Pasuruan, 1616–1617년 원정), 투반(Tuban, 1619년 원정) 등을 공격해 병합하며 수라바야를 약화시켜 갔다. 수라바야도 강대한 마타람에 맞서 선전했지만, 수라바야 최후의 동맹으로 수라바야의 중요한 식량 공급처였던 [[마두라섬]]의 공국들에 대한 공략이 1624년까지 완료되고 난 후에는 술탄 아궁이 마침내 수라바야 본토를 점령하고 전쟁을 승리로 종결지었다. 술탄 아궁은 수라바야를 무력으로 점령하기는 했지만 자바 동부에서 일찍 이슬람을 받아들였던 수라바야의 문화적 위신을 어느 정도 존중하였으며, 수라바야 점령 후 이슬람 성인 [[수난 암펠]](Sunan Ampel)의 묘를 지키며 은거하고 있던 수라바야의 공자 [[프킥 공]](Pangeran Pekik, 수라바야의 마지막 독립 공작 자얄릉카라Jayalengkara의 아들)을 1633년 마타람 궁정으로 불러와 자신(술탄 아궁)의 여동생과 결혼하고 궁정에 거하게 하였다. 이에 보답하여 프킥 공도 수라바야 궁정의 문화를 마타람 궁정으로 수입하여, 마타람이 정치 영역뿐 아니라 문화 영역에서도 자바를 통합함으로써 마타람의 문화 수준이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데 기여했다. 프킥 공의 노력으로 마타람인들이 수라바야를 비롯한 동부 지역에서 16세기에 쓰인 문헌들에 폭넓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하 별도의 절에서 다룬 자바력의 도입에도 프킥 공의 영향력이 일정 부분 작용하였을 수 있다. 1630년대, 자바 동부에서 [[수난 기리]](Sunan Giri) 이래 이슬람의 중심지로 문화적 위신이 높은 지역이었던 기리(Giri, 오늘날의 그레식 지역)에서 반독립 상태였던 영주 수난 카위스 구와(Sunan Kawis Guwa)가 마타람의 지배에 반발하였다. 술탄 아궁은 종교적 권위가 높은 기리 지역을 함부로 건드리기 난처해하다가, 결국 1636년 프킥 공을 시켜 기리의 반란을 진압하게 하였다. 프킥 공은 수난 암펠의 후손을 자처하는[* 단, 이는 수라바야 공가의 주장이며 직접 증거는 희박하다.] 수라바야 공가의 인물이었는데, 수난 암펠은 기리 지역의 초대 군주 수난 기리의 스승이었으므로 당대인들에게는 제자의 후계자가 스승의 후계자에게 반항하는 형세로 마타람 측이 종교적·혈통적 정당성을 갖추게 되었다. 프킥 공이 이끄는 마타람군은 1636년 기리를 점령하고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하였다. 술탄 아궁은 서부 자바로도 진격하여 [[치르본 술탄국]](1617년 원정)과 수므당라랑 왕국(1620년 귀순)[* 16세기 중반에 치르본 술탄국에 종속되어 있던 수므당라랑 왕국이 독립 세력으로 존재하였던 것은 약 1585년부터 1620년까지이며, 이후 마타람에 복속하였지만 마타람 산하에서 기존 토착 귀족들은 특권적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독립 수므당라랑 왕국의 마지막 군주 쿠수마디나타 3세(Kusumadinata III, 1586–1625, 재위 1608–1620)는 반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마타람에 의해 3면에서 포위된 위태로운 형국에서, 그나마 모후 하리스바야(Harisbaya)가 마타람의 초대 군주와 친척이었고 마타람의 수도와 가까운 파장(Pajang)에서 자란 것으로 인연이 있는 마타람 술탄국의 술탄 아궁을 찾아가 자발적으로 귀순하였다. 쿠수마디나타 3세는 귀순 이후에도 좋은 대접을 받아 롱가 금폴 1세(Rongga Gempol I)로서 1620–1624년간 마타람 산하에 설치된 수므당현의 1대 현령(bupati)직을 수행하였다. 롱가 금폴 1세는 술탄 아궁의 든든한 신하로 마두라 원정에서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마두라 서부 방칼란의 아로스바야 지역을 공격해 점령하기도 했다.]을 복속시키고 [[파라향안]](오늘날의 [[반둥]], [[수므당]] 등) 지역을 마타람으로 통합하며 [[반튼 술탄국]]을 크게 위협하였다. 술탄 아궁은 비록 점령하지는 못했지만 대규모 군대를 일으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거점이던 [[바타비아]]를 두 차례에 걸쳐 포위공격(1628, 1629)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최동단의 블람방안 왕국(1639년 원정)을 공격하여 수도를 점령하고 복속시키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